살다 보면 병원에서 수술을 할 일이 생깁니다. 수술을 한 그날에는 토하고 어지럽고 아파서 곧 죽을 것 같았지만 신기한 것은 그다음 날 조금 괜찮아지고 또 그다음 날에는 더 괜찮아지는 걸 느끼며 나중에는 온전해질 것을 생각하면서 회복의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1. 호세아 6장 1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만약 회복이라는 단어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문제는 과연 내가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회복이라는 단어보다 포기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해 버립니다. 그래서 죽고 자살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믿음의 사람들은 포기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됩니다. 오늘 말씀은 북 왕국 선지자였던 호세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는 여로보암 2세 통치 말기부터 북 왕국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B.C722년경까지 약 40여 년 동안 북 왕국의 선지자로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 때 북 왕국은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겉으로는 최고의 전성시대를 이루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매우 심각한 영적 상태에 직면했던 것입니다.
2. 호세아 6장 2절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니라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하나님께 대한 배교 즉 우상숭배가 만연하게 되고 하나님을 실망케 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게 됩니다. 호세아는 특별히 그 부인 모델을 통해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결혼생활 중에도 다른 남자를 찾아 간 모습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다른 신들을 숭배하는 북이스라엘의 모습이 낮 낮이 보이게 됩니다. 호세아의 자녀 이스라엘, 로루하마, 로암미라고 이름 지었는데 내가 이스라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패할 것임이니라. 그 이름의 뜻은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로다 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하나님이 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진노하셨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3. 호세아 6장 3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바르지 못한 삶을 산다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은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죄악을 깨닫고 들이키며 다시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이 모든 일들을 다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것을 예포 하는 아주 좋은 예가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당하며 찢기시고 죽으셨습니다. 도저히 살아나리라는 가능성 0% 그런데 정확히 3일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렇듯 빠른 회복이 어디 있을까요? 하나님의 회복은 회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는 굉장히 빠르게 진행이 됩니다. 고난은 길고 더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회복은 굉장히 빠르게 진행이 됩니다. 고난은 길고 더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회복은 순식간에 이루어집니다. 회복의 역사는 급격한 변화를 이루며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역사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길고 지루한 고난의 긴 터널이 끝이 나면 회복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그 회복은 고난처럼 길지 않습니다. 바로바로 역사가 일어나게 되고 좋은 일들이 줄지어 나타나게 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그러한 여호와를 알라고 했습니다. 고난으로 인하여 생긴 믿음의 오해들 그리고 야속한 불신, 원망은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연고입니다. 회복은 매우 그 진행 속도가 빠릅니다. 아마 놀랄 만큼 매우 빠르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 역사를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서 회복의 기쁨을 여러분이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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